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더러운 전쟁, 현지인들의 민심 이반 === >왜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가, '[[미군]]들은 모두 괴물이다. 옛날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러시아인들이 우리를 케밥처럼 만들어 놓더니]] 이번에는 '''[[미군]]'''이... >---- >'아들이 이렇게 죽는 것을 보면 누군들 자살폭탄 생각을 안하겠는가?''' >---- >인간의 땅; 아프가니스탄, 살아남은 자들 (KBS_2009.06.21.방송)[[https://www.youtube.com/watch?v=cb0vSMjL-zo|#]] 베트남 전쟁과 더불어 미국이 전쟁에서 패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2차대전 종전 직후에 이미 호치민과 월맹이 베트남 내 모든 정파를 압도하고 있어서 프랑스군이건 미군이건 반공주의 세력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다가 자국민의 염전 여론에 질려서 도망치듯 나가는 그림이라도 그렸다. 미 본토가 직접 공격당하는 진주만 공습 이후 전례없는 사태로 열려서 훨씬 명분이 확실했던 이 전쟁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은건 행정부들 뿐만 아니라 미군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나 소련이나 아프가니스탄 개입 전략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프간 민중들이 외국군 더 나아가 외세에 매우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별 명분도 없이 아프간 공산주의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하피줄라 아민 정권을 교체하고 엄연한 국가원수였던 하피줄라 아민을 살해한 소련에 비하면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명분이 훨씬 확실하긴 했다. 아프간 이슬람주의자들이 소련인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긴 했어도 하피줄라 아민 정권이 그것을 비호하거나 방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간인 다수에겐 미국의 침공이나 소련의 침공이나 별 다를바 없는 침략전쟁이자 이교도와 외세의 부당한 내정간섭이라고 인식하는지라 소련이 겪던 문제를 미국도 고스란히 겪게 된다. 탈레반 통치에 반감이 컸고 외부와의 교류도 비교적 활발해 계몽된 사람들이 많은 카불 등의 대도시 주민들은 미군을 환영하거나 최소한 저항하진 않았지만,시골로 가면 갈수록 미국이 이교도 십자군 국가고 생트집을 잡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는 탈레반의 선전이 점차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촌락 농민이라고 특별히 우대한건 아니었다. 그러나 외부 세계로 나가본 적도 없고 받은 교육이라고는 성직자들에 의한 코란이나 샤리아에 대한 지식 정도밖에 없던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아프간 농민과 목동들이다. 아프간인 모두가 공유하는 뿌리깊은 외세에 대한 반감을 역설하는 탈레반의 프로파간다와 선동은 이들에게 너무나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전력으로 게릴라를 토벌해 봤자, 이들 적대적인 민중들에게서 게릴라가 금세 충원되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 거기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여성들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 및 가정 내 발언권이 낮아, [[가족계획]]이 제대로 도입되지 못하고 그 결과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데[* 2020년 기준 4.64.]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게릴라에 합류하게 되므로 게릴라를 죽이면 죽일수록 오히려 게릴라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미군이나 소련군은 소수의 특수부대로 무자헤딘이나 탈레반의 지휘관들을 포착, 체포하거나 암살하는 방법도 쓰곤 했지만, 이들 반군은 이들 지휘자의 지휘력이 아니라 향촌민 대부분이 외국군에 대해 갖는 반감 및 신앙심([[이슬람 근본주의]])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제거된 무자헤딘이나 탈레반의 지도자들은 바로 다른 인물로 대체되고, 반군의 무력이나 작전능력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때문에 소련군이나 미군 입장에서 게릴라를 토벌해도 계속 충원되며, 결과적으로 외국군은 점과 선만 지배하고, 아프간의 그 넓은 영토는 게릴라들의 해방구가 되어버린다. 위에서 말한 전략적 실패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민간인 협력자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전투가 키팅 진지 전투인데 초반에 키팅 진지 주변의 아프간 주민들이 미군에게 적대적이며 키팅 진지에 있는 미군의 위치와 무장수준을 탈레반한테 상세하게 알려주어 미군에 대한 정보를 알게된 탈레반이 이를 기반으로 공격해와 미군은 8명이 전사하고 31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는다. 혹자는 이에 대해 적대적인 민간인을 전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논지를 펼치는데, 일단 미국 입장에선 점령지에서 인종 학살을 하게 되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아프간 민중을 구하기 위해 미군이 개입한다"는 전쟁 명분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되며, 미군이 이런 짓을 하게 되면 그나마 친미적인 이슬람권도 모두 미국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또한 현지의 민중 자체가 칼같이 친미, 반미 집단으로 나눌 수가 없으며 한국에서조차 정치 성향은 정반대이지만 사적으로는 매우 친밀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 관계를 무시하고 그냥 적대적인 민간인이라고 마구 죽인다면 당연히 처음에는 우호적인 민간인들조차 적대로 돌아서게 된다. 1979년에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조차도 아프간 국민 다수가 반군의 기반이라는걸 알고 있었음에도 전부 죽여서 후환을 없앨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일당 독재 체제에 철저한 감시와 언론통제가 이뤄지던 소련도 게릴라가 있다고 피점령국의 전국민을 죽이거나 수용소에 감금하는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릴라전 자체가 군사적으로 전술적 승패와 상관 없이 대전략적으로는 현지인과 점령군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현지민을 게릴라군의 편으로 만들어 점령군을 적대적인 현지민의 파도에 익사시키는 전략이고 당연히 점령군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민간인과 게릴라의 접촉은 최대한 차단하면서 대민작전으로 현지민의 민심을 사들이는 것이며 미국 등 서방세계가 단순히 도덕적이라서 민간인 학살을 꺼리는 것이 아니다. 간혹 이에 대한 예시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 전쟁에서의 [[쿠르드족]]의 예시를 드는 경우도 있는데 ISIS 전쟁에서 쿠르드족은 점령군 ISIS에 맞서는 피점령민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프간 현지인의 사례와 비교해야 하는게 적합하다. 아프간의 민중들이 이렇게 서방 세력에게 적대적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아프간 사회 전체가 보수적인 이슬람교에 경도되어 어떤 이유건 외세의 개입을 거북하게 여기는 국민 정서 때문도 있지만, 미국 주도 연합군의 실책들은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 다국적군이 군사 작전과 드론을 통한 민간인 폭격, [[미군]]을 위시한 다국적군의 민간인 오인사살이나 학살 등의 [[전쟁범죄]], 대민 범죄를 저지른 [[미군]]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처벌 거부 등으로 아프간인 일부의 그나마 호의적인 여론도 서서히 소멸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현재까지 드러난 정보로는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이나 ISAF의 전쟁 범죄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 보기는 무리가 있으며 폭격 등에 의한 사상자 사고도 고의적인 사고인 경우보다는 의도치 않은 오폭 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장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아프간 민간인이나 그 가족,지인들의 입장에서는 고의적인 것이건 실수에 의한 것이건 총이나 폭탄에 맞으면 죽거나 불구가 되는 건 똑같다.[* 게다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때문에 가장이나 아들들의 경제력이 중요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이나 장성한 아들들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면 일가족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대신 일할 아들이나 형제가 있다면 경제능력이 전무하고 얻을 수도 없는 가족 내 여성과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내몰리지는 않겠지만, 만약 집 안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유일한 성인 남성이 사망한다면 그 가족의 처지는 몹시 암담해진다.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 정부의 몰락 전에는 ISAF와 UN이 대량의 식량을 무상으로 배포했기에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의 무상 원조만으로 수많은 유가족 가정들을 지탱하는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결국 가장을 잃고 남겨진 유가족은 신체의 장기를 불법으로 팔거나 아동 성매매 악습 바차 바지(Bacha bāzī,بچه بازی) 등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멀리서 분쟁을 접하는 세계인들이야 아프간인들의 죽음이 안타까울 뿐 크게 와닿진 않겠지만 아프간에서는 그 유가족들에겐 사형 선고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애초에 테러리즘이란 것 자체가 이렇게 아무도 돕지 않는 가난한 분쟁지역에서 원조와 성금을 미끼로 자국의 어용 종교를 강요하는 걸프 만 국가들의 야욕 때문에 이리도 악화된 측면도 있다. 당장 90년대 탈레반의 부상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파키스탄의 막대한 후원 하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장 전쟁 초기 3개월동안 미국은 아프간전에서 탈레반 전사 약 1만명을 사살하는 동안, 민간인 피해가 1000여명에 달했다. 아프간전 내내 미국 군 사령부는 민간인 피해를 부차적인 것으로 넘기면서 빠르게 현지 여론을 수습하기 보다는 군사적 작전 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했고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에도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했지 이를 해결할 생각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이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최종 철수 시기에 일어난 카불 테러에 대한 미군의 보복 행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 주도 ISAF군이 언론과 UN에 선전하는 데로 아프간인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위해 정말로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했다 쳐도 아프간인 다수는 탈레반보다 못한 이교도의 침략으로 간주했을 공산이 높지만, 드론을 활용한 광범위한 폭격 작전과 대게릴라 특수전은 필연적으로 아프간 민간인을 사상시켰고 ISAF군에 덜 적대적이던 아프간 무슬림들도 미국과 미국이 시작한 전쟁에 염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게다가 [[미국]]은 20세기에 치른 전쟁들에서 익히 그러했듯 전쟁범죄 수사에 철저하게 비협조로 일관하며 방해한다. 결국 미군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는 흐지부지 된다.[[https://www.yna.co.kr/view/AKR20190412170551098|#]] 이후 아예 대놓고 전쟁범죄를 수사하는 검사까지도 제재를 하며 수사를 못하도록 한다.[[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903160979Y|#]] 이런 상황에서 오폭으로 고의가 아니였다고 미군이 그나마 낫다는 것은 처음부터 외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프간인들 다수에겐 더욱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는 이렇게 나몰라라 하는 미국의 태도는 자신의 전쟁 수행에도 해악을 끼쳤다. 1979년에 세계 2위의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침공했을 때도 1989년 철수 때까지 철저한 반외세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집요한 투쟁으로 소련군을 자력으로 격퇴하는 세계 역사의 희귀한 사례를 써낸 아프간인들이다. 20년쯤 뒤에 미국이 군대를 몰고 들어온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건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할 나라고 국민들인가? 미국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이후 배후에 있는 IS 지도자를 향한 보복 작전을 개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카불로 향하는 IS의 자폭차량을 발견해 공습으로 폭격했다고 밝히면서 민간인 오폭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이 과정에서 어린이 6명을 포함한 일가족 9명이 유폭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심지어 원래 타격대상이었던 차량조차도 자폭차량이 아닌 국제구호단체 협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미국 정부는 유가족에 대한 보상과 이주를 제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실제 이 보상을 위해 미국 정부는 유가족에게 접근조차도 하지않았고, 심지어 이 보복작전을 실시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도 전무했다. 실제로 이런식의 사건들은 아프간 전쟁 내내 끊임없이 발생했지만, 공식적으로 제대로 인정되지도 못한 사건들이 태반이었고, 결국 이러한 일들이 수백 수천건씩 누적되면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들이 죽었기에 아프간 지역에서 ISAF에 대한 인식은 최악을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미군의 이런 문제는 아프간지역의 민간인뿐만 아니라 국제구호단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대표적으로 15년에 쿤두즈에서 발생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공습이 그것이다. 이때 미군은 공습으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공습해 19명의 의사를 죽였고, 37명에게 큰 부상을 입혔지만,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국제법상 책임 추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았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미 국방부는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고였으므로 국제법상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고, 조사 결과 징계 대상이었던 이들은 모두 형사처벌이 기각된 후 기초적인 재교육을 받는것으로 징계가 정리되어 실질적으로 제대로 처벌받은 이들은 전무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실패처럼 아프간 전쟁도 미군의 고질적인 대민작전능력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위 문단들에서 지적한 아프간전의 드론 폭격 작전의 문제는 이라크 전쟁보다 더 [[베트남 전쟁]]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호치민 루트가 지나가는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겨냥한 미 공군의 폭격이 캄보디아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캄보디아인들이 미국이 후원하는 론놀 정부를 증오하고 [[크메르 루주]] 집권을 돕게 만든 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결과는 유사했다. 아프간전에서 폭격은 최신 폭탄과 무인기가 사용되어 그때보다는 정교하고 규모와 사상자도 적었지만 억울하게 가족과 지인이 죽거나 재산과 집이 파괴된 아프간인들이 외국군에 원한을 품는 일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폭격작전과 대동소이한 공통점이 있다. [[PFM-1]] 같은 국제 여론에 대놓고 반하는 폭발물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군의 행태를 답습하기보단 드론을 사용한 정밀타격이 덜 부담스럽고 더 효과적이겠다는 펜타곤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자신의 아프간 전쟁에서 투하한 나비지뢰나 화학탄, 멍텅구리 항공폭탄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제조와 설계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 미국의 똑똑한 유도폭탄들도 탈레반 반군만 골라서 폭사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기술의 발전도 아프간에서 비극을 막진 못했다. 설령 드론 폭격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미군은 무장이 열악한 탈레반을 비롯한 반군들과 달리 대규모 물자지원을 바탕으로 지뢰나 IED등을 제거할 때 현지 민간시설의 피해와 상관없이 의심되는 지역에 폭약을 설치해서 폭파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당연히 이는 해당 지역에 있던 민간인 건물의 피해를 무시한 안하무인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리 미군이 고의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고 주장해도 결과적으로 미군은 전사자 수를 줄이기 위해 과잉 화력을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인명 피해 이전에 아프간인들이 사용하는 인프라 일대를 탈레반 이상으로 물리적으로 박살을 내 버렸고, 그나마 기반 인프라가 있어 자체 복구라도 시도하는 도시와는 달리 아프간인 다수가 거주하는 농촌 일대의 인프라는 부셔지면 제대로 복구도 이뤄지지 않아 민심이 미국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넷플릭스 다큐 '터닝 포인트'에서는 IED 제거를 위해 현지 전통시장 구역의 절반을 폭약으로 날려버린 것을 보고 화가 난 현지 주민들이 "[[탈레반]]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는 불만을 미군에게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을 정도였다 . 2021년 7월 기준으로 미군이 아프간 지역에서 철수에 들어간 가운데 이전의 아프간 전쟁들에서의 다른 나라들이 거둔 전과와 비교하자면, 19세기 [[영국]]은 큰 피해를 입긴 했어도 파슈툰족 거주지 상당수를 병합하고[* 오늘날의 파키스탄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에 해당] 외교적으로는 목적을 관철하는 데 성공했고, [[소련]]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지만 나지불라 공산정권은 몇 년을 더 버텼으며, [[탈레반]]이 처음으로 아프간을 점거했을 때도 북부에서는 탈레반에 반대하는 북부동맹이 마수드의 아래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20년 가까이 전쟁을 벌였지만, 미군이 철수한 후 미국이 세운 아프간 정부는 1년을 넘길 수 있을지 의심받는 상황에서 결국 미군이 아직 철수하지 않았는데도 무너졌으며 반 탈레반 북부동맹의 근거지였던 북부조차 탈레반의 영향력 아래에 떨어졌으며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서 철수할 때도 장비는 죄다 파괴했어도 아프간 정부에 통보조차 안 해서 기지가 금방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전쟁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너무 처참한 성적표라고밖에 볼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